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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CROM _ N.EX.T

신해철 1주기 - 마왕에게 쓰는 편지

by 이세진 2015. 10. 27.

오랜만에 고스 사연체로 글을 적어볼까..?


내가 마왕을 처음 알게 된건.. 아마 2003년 무렵이었던듯 해. 

MBC 고스트네이션 시절이고, 나는 중학생 때야. 난 원래 TV를 잘 안봤었어. 그래서 '신해철'이라는 사람을 모르고 있었지.


나는 밤시간에 라디오를 들으며 깨어있기를 좋아했었는데, 어느 날 정말 늦은 시간까지 라디오를 끄지 않고 깨어 있었던 거야. 

갑자기 웅장하면서도 조금은 무서운 시그널이('we are the children of darkness~' ... 난 내가 이 시그널 음악을 듣고서 펑펑 울게 될 줄은 몰랐다.) 울려퍼졌고. DJ가 대뜸 등장해서는 말을 조잘조잘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것이 당신과 나의 첫 만남이었지.


나는 흔히 말하는 '고스 세대' 였던 거야. 

고스트스테이션을 통해 당신을 처음 접하고, 당신 노래를 만난 세대.





하루 딱 2시간만 낭비해보자고 말하는 당신의 유쾌한 웃음이 좋았고,

노래 한 곡 틀지 않고 50분을 내리 말하는 것도 좋았고,

강병철과 삼태기의 '삼태기 메들리(21분이 넘어감)'를 틀어주고 도망가는 것도 좋았고,

때론 진지하게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적은' 상담을 해주는 것도 좋았고,(리틀 플레이드 브라더스 언빌리버블 카운셀링 오피스)

음악을 세심하게 분석하여 내놓던 온갖 특집들도 좋았고,

빨간탁구공, 홍길동전, 백색의 공포, 만두귀신, 낙양성의 복수도 좋았고, (부연설명은 생략)

인디밴드들의 음악을 틀어주던 '고스 인디차트'와 '인디 온 스포트라이트'도 좋았고, (이제서야 다시 돌아보니 지금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인디밴드들은 다 그와 연관이 있다.)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아파트 불을 깜빡깜빡여 보자는 다양한(?) 이벤트들도 좋았고, (이 에피소드는 곧 방송될 드라마에서도 그려낸다고 한다.)

영화관에 모여앉아 같이 영화를 보았던 추억도 좋았고, (이날 마왕은 몇명을 데리고가서 생방송을 진행했다)

인생은 산책이나 실렁실렁하며(산책실렁교) 보너스 게임을 하는 것이며 이미 태어난 것으로 소명을 다했다 말해주는 것도 좋았고,


...


사실 좋았던 이야기를 적자면 끝도없이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왕, 내가 작년에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가 뭔지 알아?

당신이 6년만에 앨범을 발표하고 재개를 시작하려 할 때. 

당신이 쇼케이스다 콘서트다 할 때면 꼭 다른 일들이 겹치더라. 그럼에도 만사 다 제치고 당신 일을 1순위로 올려놓고 당신을 보러 갔던 것. 작년에 제일 잘한 일 중 하나인 것 같아. (근데 작년 9월 콘서트 관련 사족 하나. 원래 1열을 예매했다가.. 공연장 전체를 보고싶단 생각에 스스로 뒤로갔었음.. 하하.. 하하... 이건 내가 못한 일 ㅎㅎ)


진짜 너무너무 행복해서 '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거야?' 라고 생각할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어. 그 행복한 날이 지속되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다는 건, 심지어 이렇게 빨리 떠난다는 건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이야기였어.

그래서 난 마지막까지도. 작년 오늘까지도 나는 당신이 돌아올거라 굳게 믿었어.



2014년 10월 27일 밤. 

나는 어딘가로 달려가서 기도를 올렸어. 

그때는 많이 절박해져서..

내가 당신 음악이나 라디오를 다시 듣지 못해도 좋으니, 그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만큼은 돌려달라고. 빌었어.


그렇게 빌고 또 빌고서 버스를 탔는데. 말도 안되는 속보가 뜨더라.


이건 말이 안되는데.

하고싶은게 정말 많았던 당신에게 이건 아닌데..

이렇게 가기엔 아이들이 너무 어리잖아.. 

(동동이, 동생이.. 마왕은 고스트스테이션을 통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도 전했었다. 나는 아직도 동동이가 생겼던 그 날 마왕이 떨리는 음성으로 전해주던 방송내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마왕은 고스식구들을 고모, 삼촌이라 일컫기도 했다. 마지막 시즌에는 아이들과 행복한 모습들도 자주 들려주어서 나또한 행복했다.)



장례식장에 가서조차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고 납득이 가질 않았어.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조문을 갔는데 당신과 똑닮은 동동이가 서있더라. 아.. 이게 무슨 상황이람..

(며칠 뒤 49재 때 마무리하고 인사하던 자리에서 다시 만난 동동이는 내 불새목걸이를 보고선 팬던트를 덥썩 잡고는 '아빠 보석이다!'라고 외치며 반가워해주었어.. 난 마음을 담아 동동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즈음 며칠동안 나는 잠에 들때마다 '제발 이 긴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세요'라고 생각하며 잠들곤 했는데, 현실은 변하는게 없더라.

1년이 지난 지금도 난 여전히 현실이 어이가 없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Reboot myself part 2가 발매되고, 넥스트 신보가 발매되고, 넥스트 유나이티드의 전국투어가 이어졌어야 했는데 왜 우리가 어째서 당신을 만날 수 없게 된 것인지 모르겠어.



1년이란 시간동안 당신의 이야기와 당신의 음악을 더 병적으로 듣고 새겼던 것 같아.

그리고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며 조금씩 실천에 옮기고 있어.

실은 당신을 위한 일이기 전에, 나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앞으로도 이러고 살게. ㅎㅎ


당신이 떠난 후 당신 트위터의 글들을 다시 읽어봤던 적이 있는데, 작년 6월 후배 뮤지션의 비보에 당신은 '왠지 억울합니다'라는 글귀를 적었더라. 나도 왠지 그런 감정이 들었다. 왜. 하필 왜 그 시점에. 더 많은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던 시점이었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보내면 '서두가 너무 길어!'라고 면박을 준다거나 '있을때 잘하라 그랬잖아.'라며 날 놀리며 웃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마음이 그런걸 어쩌겠어. 

걍 청승떨지말라고 꿀밤한대 먹여줘. 아니면.. 아이디 24시간 정지형? (...)



그곳에선 잘 지내고 있어?

이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그리워해.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많이 보고싶다.




신청곡은 마왕이 틀어주던지 말던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N.EX.T의 The hero 신청. 직접 불러주면 더 좋고..


마무리는 마왕이.. 


..왁!!!





** 신해철님을 기억하는 분들을 을 위해 관련 링크 첨부합니다

  >> 북서울숲 신해철 '유년의 끝' 기념벤치 Project 펀딩 참여하기 http://www.wadiz.kr/web/campaign/detail/3108

  >> 신해철 타임라인 (since 2014~) http://www.shinhaechul.com 

      *IE 10 이상, Chrome 등 환경에서 봐주세요 (역시 브라우저도 크롬이 짱짱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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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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