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
광화문 교보문고 옆에 위치한 비전의 정체는?
최근 광화문 교보문고가 리모델링 기간을 끝내고 재오픈 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순신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을 만나볼 수 있는 광화문 광장도 시민들에게 굉장한 인기명소가 되고 있죠. 그런데 혹시, 교보문고 옆에 있는 비전의 정체를 알고 계시나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
이것은 바로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高宗卽位四十年稱慶紀念碑)>입니다.
조선 제26대 왕이였던 고종이 즉위한 지 40년이 된 것과 51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것,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쓰게 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입니다. 기로소는 정2품 이상의 문관 가운데 70세 이상이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로 고려시대 이래의 기영회(耆英會)를 계승한 것입니다.
조선 태조가 60세가 되었던 1394년 친히 기영회에 들어갔는데, 그 뒤 왕이 장수하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지 못하자 숙종이 59세가 되던 해를 망육(望六:60세를 바라보는 나이)이라 앞당겨 기로소에 들어갔습니다. 영조는 51세를 '망육'이라고 하는 신하의 건의를 받아들여 기로소를 들어갔고, 고종도 영조의 예에 따라서 51세에 기로소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 비는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고치고 황제(皇帝)의 칭호를 사용했던 것을 기념하는 뜻도 담겨져 있습니다. 비신의 네 면 상단에는 "대한제국대황제 보령육순 어극사십년 칭경기념비(大韓帝國大皇帝寶齡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라는 전서(篆書) 제목이 황태자 순종(1874∼1926)의 예필(睿筆)로 새겨져 있습니다.
남쪽 처마에도 "기념비전(紀念碑殿)"이라고 쓰여져있는데 역시 황태자 순종이 쓴 것입니다. 일반 비각과는 달리 '전(殿)'자를 사용하여 건물을 격을 높인 점이 특징입니다. 비전 둘레에 돌난간에는 연잎과 연꽃을 새긴 동자기둥이 있고, 방위에 따라 사신(四神)과 십이지신(十二支神)을 조각하여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동쪽에는 용·토끼, 남쪽에는 주작·말, 서쪽에는 호랑이·닭, 북쪽에는 거북이·쥐
-남쪽과 북쪽의 돌계단에는 각각 해태를 배치
일제강점기때 칭경기념비 남쪽 돌문을 일본인이 떼어가 자신의 집 대문으로 썼다?
이번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요. 일제강점기 당시 어느 일본인이 고종즉위 40년을 기념하는 칭경기념비의 남쪽 돌문을 떼어가 자신의 집 대문으로 썼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이야기입니다. 그 돌문은 광복 후 원래 자리에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경술국치 100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듯 불과 100년전 벌어진 일들에 대해 늘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자료참고 : http://sca.seoul.go.kr/korean/culturalAsset.jsp?sCode=100545&sClssCode=8&sClssCode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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