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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한글[윤디자인]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사람, 호머 헐버트

by 이세진 2012. 3. 8.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문자.
-한국어를 기록하는 문자.
-이젠 ‘찌아찌아족’ 등 소수민족의 언어도 기록할 수 있는 문자.

‘한글’에 대해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혹시 한글을 ‘문자’로서의 역할로만 인식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오늘은 일제강점기 당시 한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글보급에 힘썼던 선교사 호머 헐버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을 사랑했던 파란 눈의 외국인, 호머 헐버트
호머 헐버트 박사(Homer B. Hulbert, 1863~1949)는 1886년 23세 때,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국책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서 한국을 처음으로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고종황제와의 인연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외교고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사'(1905년)와 '대한제국의 멸망'(1906년) 등 한국에 대한 책을 저술하여 해외에 한국을 알렸습니다.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를 집필하고, 서재필과 함께 최초의 순 한글 독립신문을 창간했으며 <아리랑>을 악보로 만들어서 보급한 사람 역시 호머 헐버트 박사입니다.

헐버트 박사는 한글자강운동으로 유명한 주시경 선생을 육성한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주시경과 함께 최초로 한글의 띄어쓰기와 점찍기 등의 맞춤법과 문법을 연구 발전시켰습니다.

헐버트박사는 한글과 관련된 활동을 펼쳐갔던 언어학자였지만,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겼을 때에는 “조선의 살길은 교육뿐”이라며 독립운동으로 한글사랑을 이어갔습니다. 국어 연구와 보급을 통해서 국민을 계몽하고, 민족적 통일을 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헐버트 박사는 고종이 파견했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밀사로도 참석했는데요.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썼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추방당하기도 했지만, 3.1운동 이후 미국의 한인 독립단체를 도우며 한국과 한글에 대한 사랑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한국 소개 소설을 썼던 헐버트
한편 호머 헐버트 박사는 미국 청소년에게 한국을 소개하기 위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 모험소설 ‘안개 속의 얼굴(1926)'은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인들도 한글을 써야한다?!
헐버트 박사는 일찍이 한글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한글 연구와 보급에 힘써왔는데요. 자신이 저술한 저서에는 중국인들이 익히기 어려운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채택해서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국인들이 세계 어떤 문자보다도 간단하고 음운을 폭넓게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을 채택해야 한다고 나는 감히 주장해왔다."
-호머 헐버트의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1906)> 중..

 

2012년 대한민국. 제2의 헐버트 박사는 어디에?
선교사로서 한국을 찾았지만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소리친 독립 운동가였으며, 한글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전파한 교육자였고,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려 노력했던 언론인이었던 호머 헐버트 박사의 수많은 공적들은 우리가 오래토록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더불어 한글을 말하고 쓰는 우리 스스로는 과연 얼마만큼 한글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혹시 한글보단 외국어를 쓰는 것이 세련되어 보인다고 생각되나요? 국어공부보단 외국어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한국인인 우리는 한글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나요? 헐버트 박사가 떠난 지 63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한글사랑은 어느 정도인지 돌이켜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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