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6년 음력 9월에 반포된 훈민정음은 그 당시 모든 이들의 환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훈민정음을 글을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을 딱하게 여긴 세종대왕의 지휘아래 만들어진 우리글인데요.
글(한자)을 읽는 것만으로도 또 하나의 권위나 권력이라 생각했던 그 당시 일부 상류지배층들은 한글을 이용하는 것을 꺼려했다고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부분입니다. 심지어 세종대왕에게 훈민정음 제작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린 이도 있었는데요. 그 주인공은 바로 ‘최만리’였습니다.
[사진=한글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hangeulmuseum.org
최만리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이 고마운 이유
훈민정음이 비밀프로젝트였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우리는 우리말을 갖고 있었지만 ‘글’을 갖고 있지 않던 터에 중국말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는데요. 세종대왕은 왕실 최측근들과 총애하는 젊은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이때 이 프로젝트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훈민정음 반포가 이루어진 후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학자들은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게 되는데요. 상소문에서 언급된 대표적인 반대의 이유는 ‘중국에 반(反)해서 새로운 글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에 대해 미리부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그 당시 지배층들의 모습을 짐작케 합니다.
주목할 점은 최만리의 상소문에는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내용에 앞서 한글이 무척이나 뛰어난 글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대목이입니다. 이 상소문에서는 언문(한글)에 대해 '가히 신묘하여 천고에 특출하다‘고 평했으며, 세종대왕이 언문을 만든 몇 가지 이유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훈민정음 프로젝트에 동궁(세자)이 깊게 관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반대 상소문이 ‘훈민정음 비밀프로젝트에 동궁이 깊게 관여했다.’라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집현전학자의 반대를 넘어서, 세계의 글로!
한글은 과학적이고 편리한 글로서 한국의 ‘글’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자부심’으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K-pop 한류열풍 덕분에 한글을 공부하려는 외국인들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자랑스러운 글에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한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참고자료 : 책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글쓴이 : 윤디자인연구소/타이포그래피서울 기자단 이세진 http://sejin90.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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