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외/국가보훈처

얘들아, 100년 전 우리나라 이야기를 들어볼래?

by 이세진 2010. 7. 19.

얘들아, 100년 전 우리나라 이야기를 들어볼래?

(1) 경술국치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아픔을 이겨내고 우리는 세계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한민국으로 도약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암울한 치욕의 시기, 역사를 단절시킨 역사 '경술국치'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를 알아야 좀 더 견고한 미래를 닦아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경술국치에 대해 쉽게 공부할 수 있는 경술국치 100년 계기 교육 자료집 <얘들아, 100년 전 우리나라 이야기를 들어볼래?>를 발간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교육 자료집을 바탕으로 경술국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경술국치의 의미와 경술국치를 공부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청소년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자료집이기는 하지만, 모든 국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얘들아, 100년 전 우리나라 이야기를 들어볼래?> 원문 다운로드 받기 : http://kids.mpva.go.kr/data/data06.asp

 

  

 

왜 '경술국치'인가?

우리는 왜 100년 전 그 일을 '경술국치'라 부르고 있을까요? 1910년 경술(庚戌)년에 나라를 빼앗기는 국가적 치욕을 당했다는 의미에서 '경술국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했다는 의미와 나라의 권리를 빼앗겼다는 의미에서 ‘국망(國亡)’ 혹은 ‘국권 피탈(被奪)’이라고 합니다. 또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켰다는 의미에서 ‘일제의 한국병탄(韓國倂呑)’이고, 강제로 점령했다는 의미에서 ‘일제의 한국 강점’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경술국치’를 어떻게 부를까요? 일본은 대내외에 한국을 강제로 점령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조약의 명칭을 정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침략적인 성격이 너무 드러나는 ‘병탄’이라는 용어나, 두 나라가 형식적이나마 동등하게 하나의 나라로 합친다는 의미의 ‘합방(合邦)’이나 ‘합병(合倂)’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고심 끝에 일제는 ‘병합倂合’이란 용어를 새롭게 고안해 내는데요. ‘병합’이 한국을 일본 제국 영토의 일부로 삼는다는 의미가 ‘합병’보다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병합’은 한국이 아주 폐멸(廢滅)되어서 일본 제국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을 명확하게 하되, 그 어조가 너무 과격하지 않은 점을 고려한 용어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병합’은 물론이고 일제 스스로도 꺼려한 ‘합방, 합병’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쓰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병합’과 ‘합병’의 차이를 정확히 구별하기는커녕 ‘강점’ 혹은 ‘병탄’의 뜻조차 희석된 ‘합방’이란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오늘날 우리의 허약한 역사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용어의 의미와 중요성을 반드시 인지해야할 것 같습니다.

 

 

 

 

경술국치를 왜 공부해야할까?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굳이 강조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단순히 우리 민족이 독립운동을 펼치게 된 역사적 계기로만 경술국치를 기억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경술국치’의 배경과 과정, 결과를 통해 일본이 얼마나 철저하게 우리나라를 빼앗았는지 알아보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우리 역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녔으며 현재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생각하는 학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선조가 왜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 했는지, 그리고 오늘날에도 왜 ‘경술국치’가 한·일 양국 간의 민감한 사안이 되고 있는지, 나아가 우리뿐만 아니라 양국의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올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술국치와 관련된 주요 사건 및 조약

 

한일 의정서
1904년에 우리나라와 일본이 맺은 조약. 일본은 대한 제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황실의 안전을 위하여, 대한 제국은 이를 위한 일본의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일본에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하고, 이 협정의 취지에 위반되는 협약을 제 3국과는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은 이 조약을 이용해 우리나라의 많은 땅을 군용지로 차지하였습니다.

 

제1차 한일 협약
일본이 고문정치를 하기 위해 1904년에 우리나라와 강제로 맺은 협정. 외교 및 재정에 일본 정부가 추천한 일본 사람과 외국 사람을 고문으로 쓸 것, 일본의 승인 없이 다른 나라와 협약을 맺지 말 것등을 규정하였습니다.

 

을사늑약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1905년에 강제로 맺은 조약. 그러나 고종 황제가 끝까지 재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 무효의 조약입니다. '을사조약', '을사오조약', '제2차 한일 협약'이라고도 합니다.

 

정미7조약
1907년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빼앗기 위해 강행한 조약. 7개 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행정, 사법 사무를 통감부의 감독 아래에 두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합니다.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의 명의로 체결, 조인되었습니다.

 

기유각서
1909년 일본이 한국의 사법권 및 감옥 사무 처리권을 빼앗기 위해 체결한 외교 문서. 이완용과 소네 아라스케 통감 사이에 맺어졌습니다. 이 문서로 인해 법부와 재판소가 폐지되고, 해당 업무는 통감부의 사법청으로 옮겨졌습니다.

 

 

 

 

국가의 자주독립과 자유, 공존, 평화의 소중함 깨닫기

경술국치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술국치'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술국치의 배경과 원인, 과정, 결과 등을 명확하게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술국치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술국치를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준비해보았습니다.

  • 우리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원인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너무도 쉽고 분명할지 모릅니다. 일제가 무력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국권을 강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강대국 혹은 강자가 약소국 혹은 약자를 무력으로 침략해도 괜찮은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국가간·집단간·개인간 공존과 평화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그 원인을 일제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왜 우리는 일제에게 침략을 당했는지에 관해서도 다뤄봄으로써 내적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고작 100년 전 일입니다. 우리는 경술국치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일제는 어떻게 우리나라를 빼앗았을까?

여기에서는 일제가 강제로 맺었던 한일 의정서1904년·제1차 한일 협약1904년·을사늑약1905년·정미7조약1907년·기유각서1909년 등 각종 조약의 내용을 말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제가 얼마나 불법적·강압적으로 조약을 체결했는가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조약인 '을사늑약'과 ‘병합조약’의 불법·부당성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조약의 형식 문제가 아니라 일제의 우리나라 강점 및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치열하게 반일(反日) 저항 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제가 매우 주도면밀하게 우리나라를 침략했음에도 1910년에야 비로소 완전히 강점하게 된 중요 이유 중의 하나는 의병·의열 투쟁 등 우리가 끊임없이 저항 운동을 펼쳤던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반일 저항운동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 경술국치로 인해 우리는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까?

우리는 일제의 강점하에서 국토를 빼앗기고 징병·징용·군 위안부 등으로 강제 동원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말과 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다운 권리와 자유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로도 우리 삶 속에는 일제 잔재가 여전히 함께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매우 아픈 부분이지만, 너무 깊이 자리박혀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우리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제를 몰아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야만적인 무력 침략에 맞서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줄기찬 투쟁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또 앞으로도 이러한 일제 잔재들에 대한 문제나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반응형

댓글